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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71년
프랑크 왕국의 카를로만 2세가 사망하면서 카롤루스 대제가 단일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카를로마누스 2세는 서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아키텐, 부르고뉴의 군주로, 서프랑크와 아키텐의 왕 루도비쿠스 2세 발부스의 아들이자 루도비쿠스 3세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는 카롤링거 왕조의 일원으로 샤를마뉴의 4대 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879년에 죽자, 형 루도비쿠스 3세와 함께 공동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864년 또는 866년에 태어나 884년 12월 12일에 사망하였습니다.
2. 1563년
1545년부터 진행된 트리엔트 공의회가 폐회되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와 볼로냐에서 소집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의회였습니다. 이 공의회는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인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출현에 자극받은 반종교개혁의 전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세계적 신학자 한스 큉은 트리덴틴 공의회를 "개신교의 종교개혁 요구에 수많은 파문과 정죄로서 응답한 공의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공의회의 목적은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누가 이단이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단인가'를 밝혀 가톨릭 신앙 교리의 명확한 한계를 정립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공의회는 반종교개혁의 독특한 고백 성격을 지닌 공의회였으며, 종교개혁으로 빠르게 개신교화 되고 있던 유럽을 재가톨릭화하려는 목적을 이루려는 공의회였습니다. 이 목적은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수행되었고 이 때문에 전 유럽에 엄청난 폭력의 홍수를 유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후,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면서 트리덴틴 공의회에서 반포한 교령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단언했습니다.
3. 1884년
조선에서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 12월 4일에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홍영식 등 개화당파들이 청나라에 의존하는 척족 중심의 수구당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 한 일종의 쿠데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청나라의 군사 개입과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해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들은 청나라식 훈련을 받았던 좌우영군의 포섭과 장악을 소홀히 한 결과, 이들은 이반하여 청나라군에 협조하였습니다. 아울러 총, 칼 등 무기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것과 일본군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도 정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4. 1979년
특전사령부 보안반장 김충립씨가 군사 반란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12월 12일 사태, 또는 12·12 군사 반란은 19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군사 반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강제로 연행한 것으로, 이른바 '쿠데타'를 주도한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군사적 충돌 사건을 '12·12 사태'라고 부릅니다¹. 이 사건은 전두환의 군사적 실세로서의 등장과 그의 정치적 세력 확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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