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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니카 반란이 일어나다. 이 반란은 비잔티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국민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잔혹한 세금 징수와 처벌을 강행한 데 반발한 것이었다. 반란은 5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도시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다.
니카 반란은 532년 1월 13일부터 1월 18일까지 6일간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일어난 반란입니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반란이었고 하기아 소피아를 비롯한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진압으로 약 수만 명 (3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당시 반란은 전차 경주팀인 녹색당과 청색당의 지지자들이 모여 일어난 것으로, 이들은 각각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어 서로를 구분했습니다. 반란은 결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진압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2. 1847년
멕시코-미국 전쟁을 종결하는 카우엥가 조약이 체결되다. 이 조약에 따라 멕시코는 미국에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아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 와이오밍의 일부를 포함한 약 140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양도하였다.
1847년 1월 13일,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미국 전쟁을 끝낸 카우엥가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존 C. 프리몬트 중령과 앙드레 피코 장군에 의해 체결되었으며, 협약은 토마스 펠리즈가 지은 방 6개 딸린 어도비 벽돌집의 식탁에서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형식적으로는 미국으로의 캘리포니아의 양도와 멕시코와의 교전 상태의 종료, 분쟁의 대상이 되었던 텍사스의 경계를 고쳤습니다¹. 이 조약은 호세 안토니오 카릴로에 의해 영어와 스페인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미국의 존 C. 프리몬트와 멕시코의 주지사 앙드레 피코가 1847년 1월 13일 지금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노스할리우드가 된 캄포 데 카우엥가에서 승인을 하였습니다.
3. 1898년
에밀 졸라가 문학 신문 로로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다. 이 글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정치적 스캔들과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였다. 졸라는 이 글로 인해 탄핵되었으나, 후에 무죄가 밝혀졌다.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은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휩쓴 군국주의, 반유대주의, 강박적인 애국주의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프랑스 포병대위 드레퓌스의 간첩혐의를 놓고 프랑스 사회가 무죄를 주장하는 드레퓌스파와 유죄를 주장하는 반드레퓌스파로 양분되어 격렬하게 투쟁했던 정치적인 스캔들입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9월, 프랑스 정보국 요원이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문서(편지)를 통해 프랑스군 내부에 군사기밀을 독일로 유출시키는 간첩행위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드레퓌스는 부족한 증거 자료에 기초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사실 드레퓌스는 무죄였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 제3공화국을 뒤흔든 3대 사건 중 가장 큰 위기를 겪게 만든 정치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1906년에 재심을 통해 무고함이 입증되며 사건이 종결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군부는 개혁이 진행되었으며 왕정복고를 기대하던 왕당파의 세력은 사라지고 공화정이 안착되어갔습니다. 더 나아가 드레퓌스 지지파들의 이념과 전략들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반교권주의 운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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